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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놀이
예로부터 지켜 내려오는 우리민족의 연중 행사와 풍속을 월별로 살펴보고 그 의미를 되새겨 봄으로써 민족적 긍지와 문화적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 고싸움 놀이
    • 전남 광산군 대조면 칠석리 윷돌 마을에서 매해 음력 정월 10경부터 2월 초하루에 걸쳐서 벌이던 놀이다. 큰 줄을 꼬아 앞쪽에 고를 짓고 이것을 양쪽에서 밀어서 부딪게 한 다음 상대방의 고를 땅에 내려뜨린 쪽이 이기게 된다.

      이 놀이의 유래에 대해 마을 주민들은 윷돌 마을이 황소가 쭈그리고앉은 와우상이라터가 거세기 때문에 이를 풀어주기 위해 시작하였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속설은 전남 일대의 큰 마을마다 퍼져있는 이야기로 믿을 만한 것은 못되며 고싸움놀이를 줄다리기 놀이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먼저 어린아이들의 고싸움으로 시작하여 다음날에는 청소년들, 그리고 본격적으로 청년들의 고싸움으로 커가며 마을간에 대항전을 벌인다.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고싸움
      <고싸움>
  • 널뛰기
    • 부녀자들의 대표적인 놀이로 전국에 고루 분포하며 음력 정초를 비롯해 단오,한가위등 큰 명절에 행해진다.

      마당에 짚이나 가마니로 널밥을 만들어 놓고 기다란 널판을 얹어놓고 두사람이 널의 양편에 각각 올라서서 널을 뛰는 놀이이다.

      널뛰기의 유래에 대해서 별다른 정확한 기록이나 자료는 없고 다만 그 성격으로 미루어 폐쇄적 여성관이 자리 잡기 전인 고려 이전부터 전승되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시대의 여성윤리는 가능한 한 여성들의 자연스러운 몸놀림을 억제하였는데 이러한 시대에서의 널뛰기는 비인간적 제약 아래에 있던 여성들에게 하나의 탈출구가 되었을 듯 싶다.

      널뛰기
      <널뛰기>
  • 연날리기
    • 연날리기는 세계 곳곳에서 신분,연령의 구별없이 즐겨오는 놀이다. 대가지를 가늘게 잘라서 연살을만들고 종이를 붙여 연을 만들고 살에 매어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날린다. 때로 다른 사람과 서로 연실을 부벼 끊는 연싸움을 하기도 한다.

      연을 띄울 때 '송액영복'이란 글자를 써 붙이는데 이것은 질병,사고,흉년 등 나쁜 액운은 멀리 사라지고 복이 찾아 오도록 비는 마음에서이다.

      우리나라에서 연날리기가 널리 민중에게 보급된 것은 조선시대의 영조왕 때라고 한다. 영조왕은 연날리기를 즐겨 구경했고 또 장려하였다고 한다. 정월에 연날리기가 성행하게된 이유 중 하나는 일년 사계절 중 이 때가 연날리기에 가장 적당한 바람(북서풍)이 불고 있다는 점이다.

      연날리기
      <연날리기>
  • 윷놀이
    •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지닌 놀이로 남자들은 마당에 활짝 멍석을 펴놓고 여자들은 안방이나 마루방에 방석을 깔아 놓고 윷가락을 내던지며 놀았다. 지방성을 띄지않고 전국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윷을 번갈아 던져 나온 결과대로 도,개,걸,윷,모 중의 하나에 맞춰 말 네개를 윷판위에 놓아간다. 먼저 말 네개가 윷판의 최종점을 나오는 편이 이기게 된다. 크게 장작윷,밤윷(싸리윷)으로 나뉘는데 장작윷은 엄지 두께 한뼘길이 막대기로 만들어 손으로 잡고 던지며,밤윷은 한치 길이 새끼손가락 굵기로 나무를 깎아 만들어 종지에 담거나 손바닥 안에 담아 던진다.

      윷놀이
      <윷놀이>
  • 투호놀이
    • 예쁜 항아리를 뜰 가운데 놓고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져서 화살 같이 만든 청,홍의 긴 막대기를 던져서 어느 편이 더 많이 항아리 속에 던져 넣느냐를 겨루는 놀이로 옛날 궁중에서 여자들이 많이 했다고도 한다. 중국 당나라에서 시작되어 우리 나라에 건너와 고구려, 백제 때 궁중 상류사회 사람들이 즐겼던 놀이로 조선시대 때에는 임금이 경회루에서 직접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투호놀이
      <투호놀이>
  • 팽이치기
    • 겨울에 사내 아이들이 얼음판 위에서 많이 하는 놀이로 도래기 치기라고도 한다. 팽이에는 아랫쪽은 뾰족하게 깎고 위는 평평하게 깎아만든 보통 팽이 와 위 아래 모두 뾰족하게 깎아 만든 불팽이가 있다.

      얼음판이나 땅바닥에 손으로 팽이를 돌린 다음 가는 막대기에 헝겊 또는 삼실을 달아 만든 팽이채로 쳐서 세게 돌리는데 여러 아이들이 저마다 팽이를 힘껏 친 후 일제히 팽이채를 거두고 가장 오래 가는 팽이를 장원으로 뽑는다.

      먼 옛날 도토리나 상수리처럼 둥글고 길쭉한 물체를 돌리기 시작한데서 유래된 것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설은 당나라 때 놀이가 시작되어 삼국시대 때 우리 나라에 전해지고 다시 일본에 건너가서 '고마'라는 이름으로 성행, 발전하여 우리 나라에 역으로 전해졌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팽이치기
      <팽이치기>
  • 거북놀이
    • 이날은 명절이므로 농부들은 농악을 치고 술마시고 배불리 먹고 하루를 즐긴다. 여름철에 일손이 모자랄 정도로 바빴던 농부들도 정월은 한가하니 오락을 즐기게된다.

      수숫대를 벗겨 거북 모양을 만든 다음, 그 속에 2명(앞에 1명, 뒤에 1명)이 들어가서 마치 거북처럼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노는 놀이이다.

      거북놀이는 즐거운 오락일 뿐 아니라 새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이기도 하다.
      거북의 방문을 받으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고 해서 주인은 마다하지 않고 일행을 환대하는 것이다.

      거북은 바다 동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 살고, 또 병이 없는 동물로 알려져 있어, 십장생(十長生)의 하나이다. 거북놀이는 거북처럼 마을 사람들의 장수(長壽)와 무병(無病)을 빌고, 또 마을의 잡귀, 잡신을 쫓는 데서 발생된 것으로 보인다.
  • 나무쇠 싸움
    • 경남 창녕군 영산에서 행해지며 차전놀이와 비슷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목우전, 나무소싸움이라고도 한다.

      청장년들이 나무로 만든 소를 어깨에 메고 농악대를 앞세워 결전장을 몇바퀴 돌면서 기세를 올리기 시작하면 깃발을 든 주민 수천명이 두패로 나뉘어서 각기 자기 편의 소를 따라 다닌다.

      이렇게 한 뒤에 20-30m의 거리를 두었다가 양편의 소는 빠른 속도로 서로 상대방을 향하여 돌진하며 부딪는다. 이때 상대편의 소를 아래쪽으로 처지게 하거나 밀어내는 쪽이 승자가 된다.

      거주지를 중심으로 동부와 서부로 편을 나누고, 동쪽을 양(陽)이라 하여 남성을, 서쪽을 음(陰)이라 하여 여성을 상징하고, 서부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속설에 따르면 영산읍을 가운데 두고 마주 서 있는 영취산(靈鷲山)과 함박산의 모양은 두 마리의 소가 마주 겨누고 있는 형상으로 둘 사이에 산살(山煞)이 끼어 있다고 하여, 산살을 풀어주기 위하여 이 놀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 놋다리 밟기
    • 경북 안동에서 부녀자들이 행하던 놀이로 기와밟기, 동교, 인다리 등으로 불려진다.

      놀이는 정초부터 시작하여 상원야(上元夜)에 절정을 이루는데, 상원날 저녁 젊은 여자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 노래를 부르면 그 소리에 마을의 부녀자들이 모여들어 놀이가 시작된다.

      수십 명의 부녀자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허리를 굽히고 앞사람의 허리를 두손으로 껴안아 긴 사람다리(인다리)를 만든다. 다리를 만든 다음, 맨 뒷 사람부터 한 명씩 순서대로 건너게 하고 다 건넌 뒤는 내려서 그 자리에 허리를 굽히고 다시 놋다리를 구성한다. 경우에 따라 놋다리패는 몇 개나 있어 서로 만나기도 하고 길을 비켜주면서 밤늦도록 즐긴다.

      노래를 부르는 순서는 맨 앞에 선 창립(創笠)들이 선창하면 뒤에 따르는 사람들이 후렴을 받아 하는데, 이날 창립의 위엄은 대단해서 금남의 지역을 얼씬거리는 남성이 있으면 혼을 내어 쫓아 버리거나 뺨을 때려도 무방하였다. 조선시대의 엄격한 사회제도에서도 여성이 남성을 쫓아내고 놀이를 즐겼으니, 여성 해방의 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놋다리 밟기에 참가하는 여인들은 신분, 연령에 구애없이 누구나 참가하여 즐기 수 있었다. 여기에는 봉건적 위계질서를 벗어나 개방적이고 평등한 질서를 바라는 꿈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놋다리밟기
      <놋다리밟기>
  • 달맞이
    • 예로부터 보름달은 어둠을 몰아내는 밝음, 보다 밝은 세상을 약속하는 기원의 대상물로 숭상되어 왔다.

      새해 들어 가득 찬 달을 맞이하며 민중들은 갖가지 놀이를 통하여 그들의 공동체의식을 새삼 일깨우는 한편 복된 앞날을 다짐하는 놀이를 벌여왔다.

      대보름날 초저녁 홰를 가지고 동산에 올라가서 보름달 솟기를 기다린다.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먼저 보아야 길하다고 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마을 동산으로 올라간다. 달이 뜨면 홰에 불을 다리고 절을 하며 소망을 빈다. 지방에 따라 서는 이 날의 달빛을 보고 그 해 농사의 흉풍을 점치는데 달빛이 희면 비가 많이 내리고 , 붉으면 가뭄이 들고, 흐리면 흉년이, 진하고 뚜렷하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달의 대소와 고저로도 점을 쳤는데, 북쪽으로 치우치면 두메에 풍년, 남쪽으로 치우치면 바닷가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 달의 사방이 두꺼우면 풍년이 들 징조이고, 얇으면 흉년이 들 징조이며, 차이가 없으면 평년작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달집태우기'에서 그 타는 모양을 보고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달맞이
      <달맞이>
  • 동채놀이
    • 동채싸움은 경북 안동지방에 전승되어 오는 놀이로 일명 차전놀이라 한다. 1937년까지 연중행사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강변 백사장이나 벌판에서 거행되다가 일제에 의해 금지되었다. 광복 후 다시 부활하였고 1969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주민이 동서 양편으로 나뉘어지고 각 편의 대표들이 동채싸움을 벌이기로 결정하면 동채제작에 들어간다. 동채나무는 길이와 굵기가 보통 서까래만한 것으로 한 끝을 가위 모양으로 엇갈리게 놓고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매며, 둥근 방석을 가운데에 달아둔다. 지휘자는 이 방석위에 올라서서 자기편을 통솔하며 힘 센 동채꾼들이 동채의 네귀를 어깨에 멘다. 그리고 머리꾼이라고 하여 건장한 청년들이 동채 주위에 둘러서서 대장을 호위하는 한편 팔짱을 끼고 상대를 어깨로 밀거나 돌격해 들어가서 적의 대장을 동채에서 끌어내리고 동채를 깔아 눕히는 구실도 한다.

      이긴 쪽에서는 짚신을 벗어서 하늘 높이 던지고, 상대방 동채의 방석을 뜯어서 흩뿌리며 승리의 감격에 취한다. 이들은 '월사월사 동부(또는 서부)가 이겼다'고 소리를 지르며 본부로 돌아간다.

      응원하던 군중들도 농악대의 가락에 따라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부르고 춤을 추며 이들의 뒤를 따른다.

      안동 차전놀이의 유래는 통일신라 말 후백제(後百濟)의 왕 견훤(甄萱)이 고려 태조 왕건과 자웅을 겨루고자 안동으로 진격해왔을 때 이곳 사람들은 견훤을 낙동강 물속에 밀어 넣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팔장을 낀 채 어깨로만 상대편을 밀어내는 차전놀이가 생겼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는 견훤이 쳐들어왔을 때 이 고을 사람인 권행(權幸),김선평(金宣平),장정필(張貞弼)(이들을 모신 3태사묘가 안동에 있어 지금도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이 짐수레와 같은 수레 여러 개를 만들어 타고 이를 격파한 데서 비롯한 놀이라고도 한다.
  • 봉죽놀이
    • 봉죽놀이는 정월 열나흘 날 어촌에서 풍어를 위해 행하던 놀이이다. 소리와 춤으로 엮어지는 집단적인 가무놀이인데 소리의 바탕은 봉죽타령으로 서해안의 몇 곳에서 행해진다.

      일반적으로 만선으로 돌아오는 배에 꽂는 풍어기(豊漁旗)를 봉기라고 하는데, 흔히 긴 대나무 장대에 오색 종이꽃을 달았다. 그 대를 봉주라고 부르며, 대나무로 만들기 때문에 봉기를 흔히 봉죽이라고 부른다.

      정월 열 나흘 날 아침 뱃꾼들이 놀이터로 모여든다. 북잡이와 꽹과리 잡이가 장단을 맞추면 선창자가 가운데 서서 소리를 한다. 이 에 뱃꾼들 역시 소리를 주고 받는다. 노래 소리와 잡이들이 울리는 장단이 어우러지면서 사람들은 흥에 겨워 춤을 춘다.

      한 동안 쉬고 나서 사람들이 자신의 장기인 여러 노래를 비롯하여 곱사춤,고사리춤 등을 추며 이 때는 여자들도 놀이판에 들어서서 세고리기 타령을 부르기도 한다. 이같은 봉죽놀이는 보통 일주일 쯤 계속된다.

      황해도와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는 고기를 많이 잡으면 이를 '봉죽 받았다'고 하며 배가 만선의 깃발을 달고 포구로 들어올 때 사람들은 꽹과리 장단에 맞춰 봉죽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기쁨을 나눈다.

      봉죽놀이는 어민들의 바다에 대한 애착과 낭만을 엮어 놓은 놀이로, 그들의 투지를 더욱 강화시키는 수단의 하나였다.
  • 줄다리기
    • 민속, 종교적인 의미에서 성행해온 놀이이다.

      줄다리기는 지방에 따라서 단오, 한가위 또는 특정한 날과 관계없이 수시로 놀았지만 대부분 정월 대보름날에 성행되어 왔다.

      짚 또는 칡으로 큰 줄을 수십 발이나 되게 길게 꼬고 줄 양 머리에는 수많은 작은 줄을 매달아 몇몇 마을이 둘로 편을 갈라 줄을 서로 잡아 당겨 승부를 가린다.

      줄다리기에서 이기는 편이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있는데, 이는 민속놀이가 풍년풍어를 원하는 농어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즉, 농어민들은 줄다리기 등과 같은 놀이의 형식을 빌려 자연과의 끊임없는 투쟁 속에 생활을 영위해가는 그들 사이의 공동체의식을 일깨우는 한 편 보다 풍요한 생산을 바라는 그들의 생활의지를 나타낸다고 하겠다.

      198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받은 기지시 줄다리기와 주용무형문화재 제26호인 영산 줄다리기 등이 있다.

      줄다리기 장면
      <줄다리기 장면>
  • 쥐불놀이
    • 해마다 정월 대보름 하루전 열 나흗날 밤이 되면 으레 쥐불 놓는 풍속이 내려오고 있다. 논두렁 태우기라고도 한다.

      이 날 보름달이 뜨면 동네 아이들이 횃불과 깡통을 들고 마을 앞으로 모인다. 빈 깡통 사방에는 구멍이 숭숭이 뚫리고 철사로 양쪽 귀를 긴 끈으로 매단다. 그 속에는 오래 탈 수 있는 삭장개비나 솔방울을 넣은 다음 불쏘시개를 넣고 허공에 빙글빙글 맴을 돌린다. 아이들은 '망월이야' 외치면서 밭두렁과 논두렁 마른 잔디에 불을 붙인다.

      이 쥐불놀이는 쥐구멍 속에 든 쥐를 잡고, 마른 풀에 나붙은 해충과 그 알을 죽일 뿐 아니라 타고남은 재가 다음 농사의 거름이 되어 곡식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한 소망을 담고 있다.

      쥐불의 크기에 의해 그 해의 풍년 또는 마을의 길흉을 점치기도 하여 각마을에서는 다투어가며 불의 크기를 크게 하는 풍습이 있다. 그래서 다른 마을 사람들과 경쟁을 하는데 이긴편의 쥐가 진 편으로 몽땅 쫓겨가게 되어 이긴 편 마을에서는 농작물에 해를 입지 않게 된다고도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충청도 풍속에 떼를 지어서 횃불을 사르는 훈서화(燻鼠火), 즉 쥐불 놓는 풍습이 있다 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쥐불놀이를 이르는 것이다.다만, 이 놀이는 충청도 지역에만 국한된 풍속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쥐불놀이
      <쥐불놀이>
  • 지신밟기
    • 지신을 위로하며 안택초복을 비는 일종의 가장행렬의 민중놀이이다. 지역에 따라서 마당밟기, 매귀라고도 한다.

      섣달그믐날 궁중에서 한 해 동안의 복을 빌고 잡귀를 쫓아내는 새해 행사로서 한 나례의식(儺禮儀式)을 좇아 한 민간놀이이다.

      고조선의 제천의식에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춤추고 노래부르며 노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지신밟기의 성원은 일반적으로는 부락민들만으로 구성하는데 인원의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꾕쇠, 징, 북, 장고,소고 등의 풍물과 사대부, 팔대부, 하동, 포수, 각시, 촌로, 기수등으로 아루어진다. 주산과 당산의 지신풀이를 마친 다음, 마에 내려와서 집집마다 지신을 누르는데 풍물에 맞춰서 춤을 추며 놀이도 한다. 대청, 각방, 부엌, 샘, 장독, 곶간, 마굿간, 변소 등의 차례로 지신풀이를 한다.

      지신을 밟으면 터주가 흡족해 하여 악귀를 물리쳐 주인에게 복을 가져다 주고 가족의 수명과 건강을 지켜주며 풍년이 들게 해준다고 전한다.

      지신밟기
      <지신밟기>
  • 횃불싸움
    • 주로 청(소)년들에 의해 행해지는 놀이이다. 보름날 저녁이 되면 청소년들은 각기 준비한 횃대를 지니고 떼를 지어 마을 뒷산이나 언덕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두 마을의 청(소)년들 사이에 횃불싸움이 시작된다.

      달이 떠오를 때를 기다려 어느 한 편이 먼저 상대편에게 "술렁수"하면 상대편에서도 "꼴레꼴레"하며 갖은 욕설로 응수하다가 풍악이 울리면 청(소)년들이 이마에 수건을 여매고 함성을 지르면서 서로 횃불을 들이대면서 한동안 열전을 벌인다. 이렇게 싸우다 보면 한 편이 수세로 몰리게 되어 상대방에게 횃불을 많이 빼앗기게 된다. 많이 뺏는 쪽에 승리가 돌아간다.

      진 편은 그해 흉년이 들고 이기는 편은 풍년이 든다고 생각하였다. 풍요다산의 상징인 만월 아래서 횃불싸움을 벌이는 것은 보다 풍요한 새해를 맞이하려는 민중의 소망의 표현이라고 여겨진다.

  • (관)등놀이
    • 등놀이는 통일신라시대부터 행하여 왔으나 널리 성행된 것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이다.

      원래 불교행사인 연등회와 팔관회를 할 때에 노래 부르고 춤을 추기 위해 야외 무대를 만들고 이 무대와 주변에 수많은 등을 달아 장식하고, 또 그것을 구경하러 가는 길에도 등불을 늘여 꽃바다를 이루게 하였던 데서 시작된 것이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무대와 연도 뿐 아니라 비단을 둘러 다락을 짓고 산모 비단을 둘러 다락을 짓고 산모양도 만들었으며 그 둘레에는 한아름이나 되는 큰 촛대를 빽빽하게 세웠다. 이 때에는 각 가정에서도 긴 장대를 세우고 끝에 등불을 달아매었으므로 온 세상이 등불로 밝아지는 듯 하였을 것이다. 조선조에는 숭유억불정책으로 등놀이를 국가행사로 행하는 일은 없어졌으나 대신 도시 상인들이 이를 계승하여 도시민의 민간행사로 이어지게 되었다.
  • 불꽃놀이
    • 등놀이와 함께 하던 놀이로 화약이 터질 때 나는 큰 소리와 이를 뒤따라 꽃잎처럼 휘황하게 퍼지는 불꽃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이 놀이에는 화산대, 줄불, 딱총놀이, 세 가지가 있다. 화산대는 화약을 포통에 재고 그 마구리와 겉을 종이로 겹겹이 싼 다음 속에 꽂은 심지에 불을 달아 터뜨리는 것이고, 불불은 종이전대에 숯가루, 솜 같은 것을 다져 넣어 나무가지에 달아매고 밑에 서 불을 붙이면 연속적으로 튀면서 찬란한 불꽃이 흩어지는 놀이이다. 딱총은 유황, 숯가루 같은 것을 한데 버무려 콩알만하게 빚은 다음 종이에 싸놓은 것을 장난감 총에 재고 방아쇠로 때려서 큰 소리가 나게 하는 것이다.
  • 강릉 단오굿
    • 강릉 지방에서는 매년 음력 5월 5일에 단오굿이라 불리우는 대규모의 별신굿이 열린다. 음력 3월 20일에 신주(wine)를 빚기 시작하는데 4월 보름날에 서낭신을 맞이하고 5월 6일에 화산으로 끝맺기까지 20여일간 계속되는 영동지방의 큰축제이다.

      단오굿의 주신인 대관령국 사서낭을 맞이하여 강릉시 남문동에 있는 여서낭당에 모셔다가 단오굿의 굿당으로 모시었는데 이 때까지 제관들에 의한 유교적 제의와 동해안 화랭이패에 의한 무교적 굿이 함께 진행된다.
  • 그네뛰기
    • 여자들 사이에 성행하는 놀이로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그네뛰기에 대한 기록이 -고려사 열전 최충헌전-에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 주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고려시대의 그네뛰기는 왕궁을 중심으로 한 귀족사회에서도 호화롭게 성행된 놀이였던 반면 조선시대에는 고려 때와 는 달리 상류층 여인들에게는 금지된 놀이였다. 이는 당시의 봉건적 윤리규범에 의한 결과로 보이며, 따라서 조선시대의 그네뛰기는 주로 서민층의 젊은 여인네들에 의해서 놀아졌다.

      그네뛰기
      <그네뛰기>
  • 씨름
    • 우리 나라 전통적인 남자 운동경기의 하나로 한문으로는 각희, 각력, 각저라고 부른다. 넓은 마당에서 허리와 다리에 띠나 삽바를 두른 두 장정이 마주 꿇어앉아 각기 한 손으로는 다리의 띠를 잡은 다음 심판관의 호령에 의해 동시에 일어나 먼저 상대방을 넘어뜨림으로써 승부를 결정하는 경기이다. 만주 퉁구에 벽화로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고구려 때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또 고려사에 의하면 충혜왕은 씨름을 즐겨 동왕 5년(1334) 2월과 7월에 이를 관람한 기록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고려에서도 성행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경향 각지에서 남자들의 놀이로 단오, 백중날, 한가위, 농한기 등에 행해졌으며 특히 단오절에는 여자들의 그네뛰기와 함께 연중행사로 성대히 거행되었다.

      씨름
      <씨름>
  • 가마싸움
    • 가마싸움은 일명 자메쌈 또는 가마놀이라고도 하며 학동들 놀이이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각 서당의 학동 중 대표를 뽑아 총사로 삼고 각기 가마와 기를 만들며 가마싸움 준비를 한다. 가마와 기 제작이 끝나면 15일 전까지 가마를 끌고 연습을 한다. 15일이 되면 학동들은 가마를 끌고 마을을 누비고 다니며 기세를 올린다. 마을 주민 모두가 나와 응원을 하고 박수를 치며 격려를 한다. 마을을 누비고 나서 시장 넓은 마당에 모이면 서로 한참 입씨름을 하다가 총사의 지휘에 따라 접전을 하게된다. 총사의 지휘에 의해 전진하고 후진하고 좌우로 빙빙 돌다가 틈만 있으면 뚫고 들어가 가마와 가마를 부딪게 하거나 발로 가마를 차고 부순다. 또 적군의 기를 많이 빼앗으려고 한다. 한참 정신없이 싸우다보면 가마는 부서지고 기를 뺏고 빼앗기고 하여 승부가 나게 된다. 승리한 측은 빼앗은 기를 높이 들고 기세도 당당하게 마을을 다시 누비고 다닌다. 이때 마을 사람들도 승리를 축하해 준다. 행진이 서당 마당에 이르면 놀이는 끝이 난다.

      가마싸움에 이긴 쪽의 서당에서는 당년에 과거에 많이 합격한다고 하여 학동들뿐 아니라 학부형들도 기뻐하였다고 한다.

      가마싸움
      <가마싸움>
  • 강강술래
    • 남해안 일대에 전승되어 오는 민속놀이로 주로 팔월 한가위에 여성들이 노는 놀이인데 , 여성놀이 중 가장 정서적이며 율동적인 놀이이다. 고대 부족사회의 공동축제 등과 같은 모임때 서로 손과 손을 맞잡고 뛰어 놀던 단순한 형태의 춤이 강강술래의 기원으로 추측된다.

      수십 명의 부녀자들이 손을 맞잡고 둥그런 원을 지어 무리를 이룬다. 이 들 중에서 목청이 빼어난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은 뒷소리를 받으면서 춤을 춘다. 노래는 처음에 느린 가락의 진양조로 시작하다가 점점 빨라져 춤 동작도 여기에 따라 변화한다. 이렇게 노래가락에 맞추어 여러 형태로 원을 변형시키며 고사리꺾기, 덕석몰이, 청어엮기, 문열기, 기와밟기, 가마둥둥, 닭살이, 남생이 놀이 등 재미있는 춤놀이를 벌이는 것이다.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 길쌈놀이
    • 이 놀이의 유래에 대해 삼국사기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왕(유리왕)이 이미 6부를 정하고 이를 반으로 나눈 뒤 두 왕녀로 하여금 각 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였다. 7월16일날부터 새벽에 시작하여 밤 10시에 이르기까지 부의 큰 마당에 모여 길쌈을 하게 하였다. 한가위날 그 결과를 심사하며 진편에서는 이긴 편에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 이 때에 춤과 노래의 잔치가 벌어지는데 이를 가배(가위의 뜻)라고 하며 진편의 여자가 일어나 -회소 회소-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 소리가 슬프고도 맑아서 뒷날 사람 들이 이 소리에 따라 노래를 짓고 이를 회소곡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근래까지 전승되어 농촌 부녀자들이 7월에서 8월까지 일정한 장소에 모여 공동으로 길쌈을 하였으며 이를 모시두레, 돌개삼이라고도 불렀다. 길쌈이 끝난 뒤에는 노래와 춤과 음식으로 성대한잔치를 벌여 그 동안의 피로를 씻었다.

      길쌈놀이
      <길쌈놀이>
  • 소멕이놀이
    • 멍석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가 소의 형상으로 꾸미며 집집마다 찾아다닌다. 거북놀이와 비슷하나 거북놀이가 개인이나 가정의 복락을 위한 것이라면 이 놀이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더 깊이 들어 있다.

      중부지방에 널리 퍼져 있으며 황해도 일부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소멕이놀이
      <소멕이놀이>
  • 농기싸움
    • 편싸움과 같은 것인데 농기싸움 혹은 농기뺏기라고 한다. 마을마다 두레가 있고 두레음악인 농악이 있고 농기(깃발)이 있었다. 흔히 여름에 들에 일하러 나갈 때 풍물치고 나가는데 그 때 먼 발치로라도 이웃 마을 농악대와 마주쳤을 때 농기가 먼저 절을 안하고 도망치면 이 쪽 장사 몇이 쫓아가서 상대편 농기를 꺾어왔다. 이로 인해 이웃 마을과 약 40여년 전에 큰 싸움이 벌어져 살상이 난 일도 있었다.(괴산군 청안면 운곡리)

      다른 동리 풍물이 와서 북으로 정구를 세 번씩 울리면 이 쪽에서도 같이 받아준다. 답이 오면 함께 어울려 놀고 그렇지 않으면 싸움이 붙는다. 여름에 들에서 김맬 때 주로 농기싸움이 붙는다. 이때 주로 상대방의 농기에 올라가 꿩털이 달린 상부를 꺾는다. 이긴 쪽에게 절을 한다. 이때 백병전이 벌어지는데 호미, 몽둥이까지 휘둘러 편싸움이 되는 것이다.
  • 다듬이 놀이
    • 주로 부녀자들의 놀이로 다듬잇돌 앞에 두 사람이 앉아 각각 다듬이질 할 빨래를 올려놓고 특이한 다듬이질 장단을 변화있게 빨리 내며, 같은 시간에 누가 더 곱게 다듬었나를 겨루는 것인데 김제, 익산 지방에서 간혹 볼 수 있는 것으로 , 시기는 가을부터 겨울까지의 밤에 많이 하는 것이다.
  • 땟공놀이
    • 놀이기구인 땟공은 큰 자가 1미터 정도 작은 자가 30센티 정도이다. 이 두 자를 가지고 편을 짜서 놀이를 하는데 주로 뜰이나 산 언덕에서 한다.

      놀이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길쭉한 구멍 위에 가로로 작은 자를 놓고 큰 자로 뜬다. 이 때 수비군이 받아내면 죽으나 받지 못할 경우에는 구멍 위에 가로로 놔둔 큰 자를 맞춘다. 맞추면 죽고 맞추지 않으면 다음 순서로 넘어간다. 작은 자를 왼손에 쥐고 놓으면서 큰 자로 때린다. 한 손으로 작은 자와 큰 자를 들고 작은 자를 놓으면서 큰 자로 때린다. 작은 자의 거리를 잰다. 한 손에 작은 자, 다른 손에 큰 자를 들고 작은 자를 공중에 삥 돌려나려 올 때 큰 자로 친다. 이때도 거리를 잰다. 작은 자를 구멍 위에 놓고 큰 자로 떠서 올린 다음 큰 자로 때린다. 이때도 거리를 잰다. 끝으로 자기편에 죽은 사람이 있을 경우 이를 살리고 싶을 때는 손을 가랑이 사이로 넣고 구멍 위에 있는 작은 자를 떠서 올라 온 다음 큰 자로 친다. 이 때 수비군이 받지 못하면 살아나고 받으면 죽는다. 이런 방법으로 공격군이 다 죽을 때까지 계혹 한 다음 자 수를 계산해 놓은 후 교대하여 대전한다.
  • 병신 굿놀이
    • 서민들의 애한을 병신을 가장하여 양반들을 풍자함으로써 일시적이나마 그 울분을 발산시키는 오락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놀이시기 : 정월보름,단오,추석 등
      노는 곳 : 야외, 송림, 다리 밑 따위
      의상 : 평복
      등장인물 : 벙어리,장님,꼽추,절름발이,떨떨이,중풍환자,문둥이,언청이
      악기 : 사장구,물장구,활장구,앵금,퉁소,치금
      놀이법 : 처음에 지신밟기로부터 시작하여 몇 마당을 놀고 난 뒤 흥이 익으면 가장한 병신들이 선창이 부르는 노래에 따라 돌아가며 차례로 병신만이 가지는 독특한 장기를 보인다. 다음은 짝놀이로 두 사람씩 나와서 신세타령을 하는 춤 과 몸짓으로 한바탕 놀고나면 또 세사 람씩 짝을 지어 흥에 겨운 끝에 비통한 표정으로 서로 얽혀 위로하는 춤으로 발전하여 나중에는 전체가 힘을 얻어 흥겹게 조화되어 대단원을 이룬다.
  • 풀치기
    • 어린이들이 늦봄 여름 초가을에 풀 밭에서 여러 가지 풀을 많이 모으기를 겨루는 놀이이다. 먼저 제각기 흩어져 갖가지 풀잎, 꽃, 나뭇잎 따위를 뜯어 모은 다음 아이들이 땅에 모여 앉아서 한 가지씩 가운데 내어 놓는다. 내놓지 못한 수가 많은 아이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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