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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극기
  • 태극기의 유래
    • (1)유래
      • 1882년 8월 박영효가 일본에 수신사로 갈때에 제작하여 최초로 사용하였고, 1883년 고종은 왕명으로 태극도형과 4괘가 그려진 국기를 공식적으로 제정·공포하였다.

        그후, 1984년 2월 21일 국기의 제작, 게양방법 등 기본적인 사항을 정한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을 대통령령 제 11361호로 제정, 공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2)상징성
      • 국기는 대외적으로 나라의 상징이며, 대내적으로 국민의 구심체적 성격을 가진다.
  • 태극기의 뜻
    • ①태극 - 우주 창조를 상징(홍-낮, 양지, 존귀, 청-밤, 그늘, 희망)

      ②4괘 -건(하늘, 동, 태양), 이(땅, 서, 태음), 감(해, 남, 소양), 곤(달, 북, 소음)

      ③흰색바탕 - 평화와 순결, 백의민족, 평화정신를 상징

      ④원주 - 우주, 민족의 단일정신, 배달민족을 상징

      ⑤깃봉 - 더러운 연못에서도 아름답고 향기롭게 피는 연꽃같이 슬기로움으로 금색으로 제작되어 진다.
  • 국기에 대한 경례
    • ①제복을 입지 아니한 사람은 국기를 향해 오른손을 펴서 왼편 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한다.

      ②제복을 입지 아니한 사람중 모자를 쓴 사람은 국기를 향하여 오른손으로 모자를 벗어 왼편 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한다. 단, 사복한 학생도 의식 및 행사에 단체로 임했을 경우에는 거수 경례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③운동장에 있는 학생은 오른손을 펴서 왼편 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한다.
  • 국기 제작법
    • (1) 준비물
      • 태극기를 그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간단한 재료 몇가지만 준비한다. 흰 종이(A4규격이나, B4규격 정도면 무난하다). 콤파스, 자, 연필, 빨강물감과 파랑물감, 지우개, 붓, 물감 준비가 어려우면 크레파스도 무방하다.
    • (2) 따라 그려보기
      • 따라 그려보기 1
      • ①하얀 종이를 가로 : 세로 비율을 3:2로 정한다. 비율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태극문양이 비뚤어지고 4괘 배치가 정확하게 되지 않는다.
      • 따라 그려보기 2
      • ②양 끝점을 교차하는 대각선을 긋는다. 이 때도 종이의 규격이 가로 : 세로가 3 : 2로 정확했을 때 대각선 교차점이 중앙에 온다.
      • 따라 그려보기 3
      • ③대각선의 교차점을 중심으로 세로길이의 1/2인 원을 그린다. 콤파스 긴 바늘을 교차점 중앙에 고정하고 나서 세로 길이의 1/2만큼 원을 그린다.
      • 따라 그려보기 4
      • ④원 안의 대각선을 4등분하여 4등분 된 길이가 반지름이 되게 태극모양의 반원을 그린다.
      • 따라 그려보기 5
      • ⑤색칠을 한다. 색칠 순서는 먼저 빨강을 칠하고 다음에 파랑을 칠한다.
      • 따라 그려보기 6
      • ⑥4괘를 그릴 자리를 대각선 위에다 연필로 표시한다. 괘 그리기는 다음 순서대로 따라 그리면 보다 쉽다.
    • (3) 괘 그리기
      • 건 그리기
      • 건 그리기
      • 이 그리기
      • 이 그리기
      • 감 그리기
      • 감 그리기
      • 곤 그리기
      • 곤 그리기
    • (4) 제작시의 주의사항
      • ①괘는 건(乾), 곤(坤) , 감(坎), 리(離) 만으로 태극문양의 네 귀퉁이에 배치하되 그 위치는 다음과 같다.

        ②바탕 왼쪽 윗 귀퉁이에 건, 오른쪽 아랫 부분 귀퉁이에 곤, 오른쪽 윗 부분 귀퉁이에 감, 왼쪽 아랫 부분 귀퉁이에 리를 배치한다. 괘를 구성하는 막대 모양을 효(爻)라고 한다. 효는 긴 효(긴 막대 모양)와 짧은 효(긴 막대 모양의 절반)가 있다.

        ③건은 긴 효 셋을 가지런하게 쌓듯이 그린 모양이며, 곤은 짧은 효를 세 개씩 두줄로 쌓듯이 그린 모양이다. 감은 맨 아래 짧은 효 두 개,중간에 긴 효, 맨 위에 짧은 효 두 개를 그린 모양이고, 리는 맨 아래 긴 효, 중간에 짧은 효 두 개, 맨 위에 긴 효를 그린 모양을 말한다. 설명이 복잡한 듯하나 완성된 태극기를 옆에 놓고 이해하면 빠를 것이다.

        ④괘는 반드시 검정색으로 칠한다

        ⑤태극으로부터 대각선상의 태극지름의 1/4 만큼 떨어져 각 4괘의 전체형태를 그린다. 각 4괘는 대각선을 중심으로 하여 그리며, 또한 대각선에 직각을 이루게 하여 그린다. 4괘의 전체형태의 길이 방향은 태극지름의 1/2, 폭 방향은 지름의 1/3 로 한다. 각각 효의 폭은 태극지름의 1/2 로 하며, 각 효간의 사이 간격은 태극지름이 1/24 로 하여 4괘를 그린다.

        태극기 작도법
        <태극기 작도법>
  • 역사속의 태극기
    • 우리나나에서 가장 오래된 데니태극기
    • (1)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 (일명 데니태극기) 1890
      - 고종이 조선정부의 외교고문으로 일하던 미국인 데니에게 하사 한 태극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이다.
    • 불원복기
    • (2)불원복기 1906
      - 전라남도 구례일대에서 활약한 고광순의병장이 일본군과 싸울 때 사용한 태극기이다. 그는 굳은 신념으로 '멀지 않아 국가를 회 복한다.(불원복기)'라는 글자를 태극기에 써 넣었다.
    • 평양숭실학교 시위태극기
    • (3) 평양숭실학교 시위태극기 1919. 3. 1.
      - 평양숭실학교 교정에 게양됐던 대형태극기. 숭실중학교 학생 김건이 동료들과 함께 제작한 이 태극기를 교정의 국기게 양대에 높이 올려 독립선언식 개최를 알렸다.
    • 미주 지역 학국독립의회 시위태극기
    • (4)미주 지역 한국독립의회 시위 태극기 19191. 4. 1. - 16.
      - 미주 지역 동포들이 국내로부터 3.1운동 소식을 듣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4월 14일부터 6일까지 필라델피아의 독립관에서 '한인자유대회'를 개최하였다.
      여기서 우리 민족의 독립선언과 임시정부 수립을 전세계에 널리 선포하고 시위행진을 하였다.
      그리고, 아래의 사진은 한국독립의회 만세 시위행진 장면이다.
    • 진군기
    • (5) 진군기 1920년대 - 독립군이 사용하던 진군기이다.
    • 김구선생이 서명한 태극기
    • (6) 김구선생이 서명한 태극기 1941. 3. 16.
      - 임시정부 주석 김구선생이 안창호의 부인인 이혜련여사에게 보 낸 친필 서명 태극기.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과 인력, 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강노말세인 원 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광복을 완성하자'는 말을 어디에서나 한국인을 만나는 대로 전해 줄 것을 하고 있다.
    • 학도병 서명 태극기
    • (7) 학도병 서명 태극기 1950. 9. 1.
      - 제 3차 학도병 지원 당시 학도병들이 서명한 태극기 조국을 위 하여 몸바칠것을 맹세하고 부산 주둔 육군부대에 자원입대시 사 용하였다.
    • 민가에서 수집한 태극기
    • (8)민가에서 수집한 태극기
      1900년경 충남 예산의 한 민가에서 수집한 태극기로써, 전체적인 모양이나 괘의 위치가 현재의 것과는 많이 다름.
    • 한국전쟁당시의 참전용태극기
    • (9) 한국전쟁당시의 참전용태극기
      한국전쟁당시 이철희 특무상사가 소지하였던 참전용 태극기
    • 통신원 태극기
    • (10)통신원 태극기
      구한말 통신원에서 게시하면서 사용하였던 태 극기인데, 일본에 빼앗겼다가 1967년 일본으로부터 반환받아 옴
    • 광복군 서명기
    • (11)광복군 서명기
      1946년 중국 방부에 있던 광복군이 조국 광복에 대한 소감을기 록한 광복군 태극기
  • 태극기와 유관순
    • 조선일보에서 태극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인물이 누굴까하고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많은 응답자들이 유관순(柳寬順, 1904-1920)이라고 대답했다. 1919년 삼일독립만세운동 때 상징 인물이자 태극기 때문에 희생된 인물이 유관순이다. 충청남도 천안 출신. 아버지는 중권(重權)이며, 어머니는 이씨이다. 1916년 기독교 감리교 공주교구의 미국인 여자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학당(梨花學堂)의 교비생으로 입학하고, 1919년 3. 1운동이 일어나자 이 학교 고등과 1년생으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그뒤 일제가 이화학당을 휴교시키자 고향으로 돌아와 교회와 청신(靑新)학교를 찾아다니며 서울에서의 독립 시위운동 상황을 설명하고, 이곳에서도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조인원. 김구응 등의 마을 지도자를 규합하여 연기, 청주, 진천 등지의 교회와 유림계를 규합, 이해 음력 3월 1일(4월 2일) 아오내 장날을 기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추진하였다. 이날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격렬한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시위 전개에서 잔인한 일본헌병의 총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피살당하고 자신은 아오내 만세시위 주동자로 잡혀 일제의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하지 않았다. 공주 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았으나 이에 불복, 항소하여 경성[서울] 복심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때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일제의 한국 침략을 규탄, 항의하고, 일제 법률에 의하여 일제법관에게 재판받음이 부당함을 역설하며 일본 검사에게 걸상을 던져 법정모욕죄까지 가산되어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았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 중에도 틈만 있으면 독립만세를 고창하였고, 그때마다 형무관에게 끌려가 모진 악형을 받았다. 불굴의 투혼으로 계속 옥중항쟁을 전개하다가 1920년 17세의 나이로 끝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유관순이 참살된 지 이틀 뒤에 이 소식을 들은 이화학당 교장 푸라이와 월터 선생은 형무소 당국에 유관순의 시체 인도를 요구하였으나 일제는 이를 거부하였다. 유관순 학살을 국제여론에 호소하겠다고 위협하고 강력하게 항의하자 일제는 할 수 없이 시체를 인도하였다. 시체를 인수한 이들이 석유상자 속에 든 유관순의 시체를 열어보니 토막으로 참살된 비참한 모습이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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