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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기훈화자료
  • 설날
    •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 세수(歲首).원단(元旦)이라고도 하며, 조심하는 날이라 해서 신일(愼日)이라고 쓴다. 조선시대에 대신들은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렸었다. 이 날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 하고, 아이들이 입는 새 옷을 세장(歲粧) - 설빔이라고 하며, 어른들을 찾아 뵙는 일을 세배라 한다.

      그리고 이 날 대접하는 음식을 세찬(歲饌)이라고 하며, 또한 이에 곁들인 술을 세주(歲酒)라 한다. 세찬으로는 떡국을, 세주로는 도소주가 나오는데, 떡국은 손님 대접에도 쓰고 제사에도 쓰므로 세찬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 또 이 날에는 시루떡을 쪄서 올려 놓고 신에게 빌기도 하였고, 민가에서는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가기를 빌기도 하였다. 설날 꼭두새벽에 거리에 나가 맨 처음 들려오는 소리로 1년간의 길흉을 점치는데, 이를 청참(聽 讖)이라 한다.

      속설에 의하면, 남녀가 1년간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빗상자속에 넣었다가 설날 황혼을 기다려 문밖에서 태움으로써 나쁜 병을 물리친다. 그리고 속담에 나오는 야광귀신은 설날 밤, 인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곧 신고 가버린다. 그러면 그 신의 주인은 곧 불길해진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귀신을 두려워하여 모두 신을 감추고 불을 끄고 자기도 하였다.

      설날 3일동안은 길거리에 많은 남녀들이 떠들썩하게 왕래하는데, 아는 사람을 만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승진하세요", "생남하세요", "돈 많이 버세요" 등 좋은 일을 들추어 하례한다. 이렇게 남이 바라는 바를 말하는 것을 덕담(德談)이라고 한다. 설날의 놀이로는 남녀가 다 같이 방안에서 윳놀이를 하고, 젊은 부녀자들은 널뛰기, 남자들은 연 날리기를 한다.

      1910년 우리나라를 강점한 일제는 수천년 동안 민가에서 지켜 내려와 관습화된 음력설을 말살하고자 갖은 박해를 가하였으나, 끝내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 중의 하나인 설날의 의미를 깊이 새기고, 이번 설날에도 웃어른들을 찾아뵙고 새배 및 덕담 올리는 것을 정중히 하도록 하자.
  • 3.1절에 대하여
    • 1. 유래 및 해설
      • 1919년 3월 1일은 우리 현대 민족사에서 매우 뜻 깊은 날이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군국주의를 앞세우며 우리나라를 강제로 합병하여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 일본의 식민통치하에서 삶의 기본권 마저 빼앗긴 채 고통과 압박 속에서 나라 없는 설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애국지사들은 저마다 독립운동에 나섰고 제 1차세게 대전이 끝날 무렵, 파리 강화 회의에서의 민족 자결주의 원칙 발표는 피압박 민족에게 큰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조에 발맞춰 1919년 3월 1일, 33인의 민족 대표가 중심이 된 가운데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전국의 남녀노소들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제 관헌의 총칼 앞에 맨 주먹으로 총궐기하였습니다. 결국 뜻은 이루지 못했으나, 이는 자유와 독립을 사랑하는 문화민족임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정신이 겨레의 가슴속에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독립을 찾게 되었으며 이 날을 빛내기 위해 삼일 적을 국경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 2. 3.1 운동의 교훈
      • 우리나라는 1910년에 이웃 나라 일본의 침략을 받아 주권을 빼앗기고 강제로 합병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일본은 우리 나라에 총독부를 설치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빼았으며 우리 민족을 탄압하였던 것입니다.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긴 지 꼭 10년째인 1919년, 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에 표방한 민족 자결주의와 우리의 자주 정신에 힘입어, 민족 대표 손 병희 선생을 비롯한 33인이 3월 1일을 기하여 독립 선언서를 온 세계에 선포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선열들의 독립과 자유를 찾겠다는 굳은 의지와 자주 정신은 높은 가치가 있으며 특히 많은 학생이 앞장을 섰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과 고통을 깊이 깨닫고 국가의 총력안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명심하여야 하겠습니다. 독립을 잃은 그 나라의 국민은 물 없는 고기의 삶이요, 숲 없는 새의 삶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나라를 수호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3.1 정신을 이어 받아 나라의 힘을 더욱 강하게 키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이 날의 정신을 길이 길이 새겨서 빛내야만 되겠습니다.
  • 식목일을 맞이하여
    •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는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하루에 다 자라는 나무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나무를 심고 가꾸어 아름다운 산하를 만드는 데는 적어도 몇 십 년이 걸립니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그 때문에 미래를 심는다는 뜻과 같은 것입니다.

      현대는 과학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달을 위시한 우주의 여러 부분을 정복하여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꿈이 차츰 현실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연은 점점 파괴되어 자연과 조용히 마주 앉아 대화하는 생활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자연 속에서 조화로운 생활을 해 왔습니다. 자연과 인간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마음 속에 자라고 있는 나무는 자신의 영혼을 지켜 주는 파수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선 자신의 마음 속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기 위해서는 자연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자연과의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자연과의 대화, 자연과의 조화. 그것은 인간의 내면 세계를 윤택하게 해 주는 영혼의 윤활유입니다.

      가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봅시다.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해 자연과 대화를 합시다.

      나무를 심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나무를 잘 가꾸는 것이다. 나무를 가꾸지 못하는 사람은 도리어 나무를 못살게 하기도 한다. 나무를 마구 흔들거나 가지를 잡아당겨 꺽거나 하면 나무는 매우 싫어한다. 나무도 우리와 같은 생물로서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나무는 사람들의 정성을 잘 안다. 정성들여 심은 나무는 잘 살고, 정성들여 가꾸는 나무는 무럭무럭 잘 자란다. 우리 모두 식목의 계절을 맞아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에 정성을 들여 보자.

      여러분 ! 4월 5일 식목일을 맞아 나무를 심어보지 않겠습니까?

      나무를 심을 수 없는 여건일 경우 화분에 꽃 한송이라도 가꾸는 정성을 발휘해 봅시다.
  • 4. 19 학생 의거에 대하여
    • 1. 유래 및 해설
      • 자유당의 장기 집권으로 부패와 독재성이 짙어지고 1960년 3.15부정 선거가 자행되자 이에 항의하는 운동이 3월 15일 밤 마산에서 일어났다. 경찰서가 불타고 학생들의 사상자가 생긴 마산 사건을 계기로 학생 시위가 전국으로 파급되었다. 이 때 서울에서는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3천여 명이 부패와 독재정치의 추방 등을 외치면서 시위를 벌이고 돌아가는 길에 깡패의 습격을 받아 40여 명의 부상자가 생겼습니다.

        다음 날인 19일 아침 서울의 전 대학생과 여러 고등학교 학생이 일반 시민들의 열렬한 박수와 격려를 받으면서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관의 무차별 발포로 100여 명의 사망자와 800여명의 부상자가 생겼으며, 서울 신문사와 수십 개의 파출소가 불탔습니다.

        24일 이기붕 국회 의장이 공직에서 사퇴하고 25일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당 총재직에서 물러날 것을 서명했지만 시위는 계속되었고, 26일 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은 학생 대표를 만난 뒤 10시에 하야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학생과 민중은 기어이 불의를 꺾고 민주주의를 소생시켰던 것이며, 다시 계엄 사령부와 협조하여 질서를 회복시켜 나갔습니다.
    • 2. 4. 19 학생의거의 의의
      • 1960년 4월 19일, 이 날은 젊은 학도들이 불의에 항거하여 꽃다운 투지를 유감없이 발휘해 이 땅에 민주주의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다 준 역사적인 날입니다.

        일제 침략하에서의 광주 학생 의거와 공산 치하에서의 반공 학생 의거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 받아 젊은 학생들이 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싸웠으며, 민주주의의 정의에 대한 신념을 심어 주는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4월 19일 전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면서 시위를 벌이자 이승만 대통령은 12년간의 장기 집권을 반성한다는 하야 성명을 발표하니, 학생과 민중을 승리를 하게 되었고 기어이 민주주의를 소생시켰습니다.

        4·19의거로 말미암아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자유와 행복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으며, 세계 여러 나라로 하여금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여 존경과 호의를 받을 수 있는 빛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 어버이날에 대하여
    • 1. 유래 및 해설
      •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 국회에서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정하여 이 날을 기념해 오다가 1974년 다시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어버이 날'로 개칭하여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도 아울러 추앙하는 행사를 하고 있는데 그 기원은 다음과 같은 사연에 연유하고 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주 어느 마을에 한 소녀가 사랑하는 어머님을 여의게 되었습니다. 몹시 슬퍼하던 소녀는 어머님의 장례를 치른 후 그 묘소 주위에 어머님이 평소 좋아하시던 카아네이션 꽃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님을 생전에 잘 모시지 못했던 것으로 후회했습니다. 소녀는 어느 모임에 참석하면서 가슴에 흰 카아네이션 꽃을 달고 나갔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소녀는 돌아가신 어머님이 그리워 어머님 묘소에 심어 놓은 카아네이션과 똑 같은 꽃을 달고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소녀는 어머님을 잘 모시자는 운동을 벌였고, 이 운동이 점점 번져 어머니 날로 정하기까지 이른 것이며, 이 날이 되면 어머님이 살아계신 분은 붉은 카아네이션 꽃을 어머니 가슴에 달아 드리고, 어머님이 돌아가신 분은 자기 가슴에 흰 카아네이션 꽃을 달게 되었습니다.
    • 2. 효(孝)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자
      • 여러분! 부모님의 사랑은 한없이 크고 넓으며 끝이 없는 데 우리는 부모님의 고마움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아파서 누워 계실때 여섯살짜리 어린 율곡은 이마를 땅에 대고 "어머니 병환을 빨리 낫게 해 주세요" 하고 혼자 빌고 있었답니다. 훗날 율곡은 훌륭한 정치가로, 석학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효성심이 가득한 사람은 커서도 훌륭한 사람이 되는 예를 얼마나 많이 보아 왔습니까? 효도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겠습니다.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목숨까지 내던질 넓고 깊은 사랑을 지니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버이를 가까이 모시고 있는 우리들은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부모님을 위로해 드리고 효도하는 데 온갖 정성을 기울려 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은 사람에게 가장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일이므로 우리는 마음속 깊이 새기고 실천합시다.
  • 스승의 날
    •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우리 학생들을 올바로 교육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애쓰시는 선생님들의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날인 것이다.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착한 마음을 갖도록 가르쳐 주신다. 그리고 튼튼한 몸을 갖도록 길러 주신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지혜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할 능력과 슬기를 길러 주신다. 우리의 하루 생활을 보면 집에서 잠자는 시간 외에는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같이 공부하는 시간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대부분의 선생님께서는 우리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골고루 사랑하고, 또 공부를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까 하고 밤낮으로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신다. 가끔 때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랑의 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학생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표현인 것이다. 만약 선생님이 아니라면 학생의 장래도 신경쓸 필요가 없으니까 무관심할 뿐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선생님들의 깊은 뜻과 마음을 다시 한 번 헤아려 보아야 하겠다.

      예로부터 "군사부일체"라 하였다. 즉, 학생의 입장에서 볼 때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스승은 아버지와 같이 엄하게 교육을 하는 입장이라는 뜻이고, 더 나아가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하여 스승을 부모보다도 더 위로 알고 존경하여 왔던 것이다.

      우리는 스승의 날을 맞아 우리 선생님을 더욱 존경하고, 선생님의 깊은 사랑과 뜻을 받들어 열심히 공부하고 튼튼한 몸을 길러 착하고 슬기로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선생님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스승의 날의 가장 큰 선물은 값비싼 물건들이 아니라 착하고 슬기로운 사람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덧붙여서 정성이 담긴 편지들도 선생님들에게 큰 보람을 주는 일 이다. 가끔씩 선생님들의 노고에 답례하는 편지들을 많이 쓸 수 있도록 노력하자.
  • 현충일에 대하여
    • 1. 유래 및 해설
      • 이날은 우리나라 국토 방위와 겨레의 행복을 위하여 고귀한 목숨을 바친 순국 용사들의 영혼 앞에 제사를 지내며 명복을 비는 날입니다.

        현충일이 있기 전에는 육·해·공군 합동으로 추모 행사를 해 오다가 1956년부터 정식으로 6월 6일을 공휴일로정하여, 온 국민의 정성으로 호국 영령들을 추모하는 제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날은 조기를 달며 오전 10시를 기해 전국적으로 일제히 울리는 사이렌과 종소리에 맞춰 모든 국민이 묵념을 올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 2. 현충일을 맞이하여
      •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단 하나 뿐인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리시고, 민족의 횃불이 되신 수많은 선열들이 계십니다. 지금 국립묘지에서 고이 잠드신 호국의 영령들이 바로 그 분들입니다. 그 외에도 이름 없는 산야에 묻혀 우리를 지켜 보는 많은 영령들이 계십니다. 선열들의 이러한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의 국가와 나라가 존속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학교 교정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에도, 여러분의 몸에도 그 분들의 피와 얼이 흐르고 있습니다.

        현충일이 되면 우리는 고개 숙여 호국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은혜에 보답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분들께서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선조였듯이 우리도 뒤따라 올 세대에게 자랑스러운 일을 물려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 모두의 염원인 조국의 통일을 이룩하여 대한 민국을 세계 역사 창조의 주역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선열들께 보은하는 참된 길인 것입니다.

        비옥한 들판과 푸른 산을 바라봅시다. 이 산하에서 숨쉬며 지켜보고 계실 선조들의 얼을 찾고 느껴, 우리가 이룩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 6.25에 대하여
    • 1. 북한의 남침과 피아의 전력
      •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서해안의 웅진반도로부터 동해안에 이르는 38선 전역에 걸쳐 국군의 방어진지에 맹렬한 포화를 집중시키면서 기습공격을 개시하였다. 적의 YAK전투기는 서울 상공에 침입하여 김포비행장을 폭격하고, 시가에 기관총 난사를 하였다. 당시 국군은 노동절(5월 1일), 국회의원 선거(5월 30일), 북한의 평화공세 등 일련의 주요사태를 전후하여 오랫동안 비상근무를 계속하여 왔기 때문에 오히려 경계태세가 이완된 상태였다. 특히 북한의 평화공세에 대비하여 하달되었던 비상경계령이 6월 23일 24시를 기해 해제되어 병력의 1/3이상이 외출 중인 상태에서 기습공격을 받았다.
    • 2. 경과 및 유엔의 조치
      • 남한에 대한 북괴의 남침을 평화의 파괴, 침략행위로 보고 미국 정부는 6월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즉시 소집을 요구하였다. 같은 날 오후 2시에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이 제출한 결의안을 9:0, 기권1(유고), 결석 1(소련)로 채택하고, 평화의 파괴를 선언하고 적대행위의 중지와 북한군의 38선까지의 철수를 요구하였다. 동 결의안은 또한 모든 회원국이 동 결의안의 집행에 있어 유엔에 대하여 모든 원조를 제공하며, 북한집단에 원조를 하지 않도록 촉구하였다. 미국과 관계 회원국들은 맥아더 장군을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한 후 미국을 비롯한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프랑스, 캐나다, 남아공화국, 터키, 타이, 그리스, 네덜란드, 콜럼비아, 에티오피아, 필리핀,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16개국이 육,해, 공군의 병력과 장비를 지원하였으며, 그 밖에 많은 나라들도 각종의 경제적, 인도적 지원을 한국에 제공하였다. 그 후 같은 해 9월 16일의 인천상륙작전을 전환점으로 하여 전세를 반전시킨 유엔군은 패주하는 북한군을 추격, 10월에는 평양을 수복하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2월에는 북한지역에서 철수하게 되었고, 38선이 돌파된 후인 51주년 1월 4일 대한민국정부는 다시 서울을 철수하게 되어 전선은 현재의 휴전선 일대로 고착되었다.
    • 3. 피해와 정치회담의 결렬
      • 3년 간에 걸친 동족상잔의 전화(戰禍)는 남북한을 막론하고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으며, 막대한 인명피해를 내었다. 전투병력의 손실만 해도 유엔군이 한국군을 포함하여 18만 명이 생명을 잃었고, 공산군측에서는 북한군 52만 명, 중공군 90만 명의 병력을 잃었다. 또한 전쟁기간 중 대한민국의 경우 99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한편 북한지역으로부터는 300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공산학정을 탈출, 자유로운 생활을 찾기 위해 고향과 가족, 친척들을 북에 둔 채 남한으로 월남하여 대한민국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휴전협정에 의거하여 한국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정치회담이 제네바에서 개최, 그 해결방안으로 자유총선거를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통일 독립된 민주정부를 수립하자는 안을 제시하고, 주한 유엔군은 이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전을 지키게 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러나 공산측은 주한 유엔군의 철수를 강요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위장평화통일 제안을 내놓고 정치적 선전에만 급급함으로서 회담을 교착시켰으며, 끝내 회담은 결렬되었다. 이로써 한반도는 휴전선으로 분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제헌절에 대하여
    • 1. 유래 및 해설
      • 제헌절은 4대 국경일의 하나로 1948년 7월 17일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 헌법이 우리 손으로 공포된 날을 기념하는 날 입니다.

        이 헌법에는 우리나라 정치 형태, 국민의 권리, 의무, 국회 정부 법원이 어떤 권능을 가지는가 등에 대하여 규정해 놓은 우리나라의 으뜸 법입니다.

        이런 헌법이 만들어진 것은 1910년 한·일 합방 후 36년이 지나 1945년 해방이 되었으나 미·소 양국의 군정 등 복잡한 양상이 전개되다가 UN에서 남북 동시 총선거 실시를 결의하여 시행하려 했으나, 소련과 북한측의 반대로 1948년 5월 10일 UN감시 하에 남한만이 총선거를 실시하여 198명의 제헌 의원을 뽑아 국회를 구성하고 5월 31일 전문위원을 선출하였습니다. 이리하여 6월 23일 본회의에 상정되어 3차에 걸친 독회 끝에 통과되어 7월 17일 공포 시행하게 되었고. 그 후 9차례의 개헌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2. 의미
      • 헌법은 나라의 정치 형태, 국민의 권리 의무, 권력 구조 등을 규정해 놓은 법으로 1948년 7월 17일 최초로 공표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9차례 개정했는데 현행 헌법은 민주 정치를 토착화하고 정의 사회를 구현하며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헌법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하는 데 지킬 여러 가지 규칙이 있듯이 온 국민이 지켜야 할 법이 필요합니다. 이 법은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 의무를 보장하기 위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 국민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는 이를 잘 지켜 나가고 법을 운용하는 사람도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해마다 다가오는 제헌절에는 국기를 게양하고 그 뜻을 되새기며 준법생활에 대한 반성과 다짐의 날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 학생들도 이 법의 소중함을 알고 당당한 민주 국가 국민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일익을 담당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공부하는 학교의 훌륭한 전통도 우리가 세우는 것이니, 우리 모두 규율을 잘 지켜 앞날의 나라와 겨레를 이끌어나갈 주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 광복절
    •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3.1절, 제헌절, 개천절과 함께 4대 국경일의 하나로 온 국민이 이 날을 경축한다.

      광복절의 뜻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우리나라가 1910년 나라를 빼앗긴 후 36년 간 일본의 압박 밑에서 사람대접도 못 받고 고생하며 살다가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된 날이요, 둘째로 그로부터 3년 간 미군정을 거쳐 1948년 8월 15일에 우리민족의 힘으로 민주국가를 처음으로 세운 날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어찌하다가 구한말에 이르러 한때 나라를 빼앗겨 온갖 고생을 다하였다. 나라가 없었다는 이유로 온갖 고생을 하던 우리 민족은 해방을 맞아 자유를 되찾고 즐거워했으니,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해방이후 6.25동란, 4.19혁명, 5.16쿠데타, 10월 유신,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격동의 사회변화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우선 농사만을 주로 하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사회로 탈바꿈했고, 세계 10대 수출대국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런 경제적 부흥을 발판삼아 86 아시안게임, 88 서울 올림픽, 93 대전엑스포 등 굵직한 세계대회를 연달아 개최하였고,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하여 세계속의 한국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산다고 하는 것은 경제가 발전하여 돈을 많이 벌고 물질만 풍부하다고 하여 되는 것이 아니고, 물질문명에 병행하여 정신문명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즉, 정신적으로 잘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의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에 맞게 사는 인간다운 삶을 말한다. 인간답고 바르게 살지 못하면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행복하지 못한 것이다.

      언제 보아도 휴지 한조각 없이 깨끗한 거리와 운동장, 푸른 산과 들, 맑은 시냇물과 파아란 하늘, 질서있고 친절한 태도와 예절바른 행동...이런 것들은 광복 60여년을 앞에 둔 우리 한국의 특색으로 굳어지게 곱게 곱게 다듬어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은 자연은 물론 국민의 마음씨가 따뜻하여 다시 오고 싶다" 라는 소리가 세계속에 울려 퍼질때 애국선열들 앞에 떳떳한 광복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추석
    • 음력 8월 15일은 중추절, 또는 한가위, 가배라고도 부르는 추석입니다. 신라의 가배에서 유래된 이 명절은 1년 중, 음력 정월 보름과 함께 우리 민족이 가장 즐기는 명절이며, 특히 시골에서 더욱 즐기고 있습니다. 이는 새 곡식이 이미 익었고 풍요로운 수확이 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날 사람들은 햇곡식으로 송편을 빚고, 닭고기나 막걸리 등을 준비하여 이웃과 오순도순 나누어 먹으며,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습니다.

      신라의 풍속에 6부를 나누어 2부로 만들고 두 왕녀가 각각 한 부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7월 16일부터 매일 일찍이 뜰에 모여 베를 짰습니다. 그리하여 이경 시각인 밤 11시경이 되어서야 일을 끝냈습니다. 이렇게 하여 8월 보름에 성적을 가려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크게 대접하였습니다. 이 때 노래와 춤을 추며 온갖 놀이를 즐겼다고 합니다. 진 편의 여자들이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되 '회소회소'하니 그 소리가 애처롭고 청아하여 그 소리를 따라 노래를 지었다. 하는데 이를 회소곡이라 합니다. 남자들은 활쏘기 대회를 열어 무술을 겨루었고, 그 후에 음식으로 즐기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명절 하면 재미있게 노는 날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선조들께서도 즐거이 추석을 보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 준 하느님과 자연에 감사하고, 또한 조상들의 은덕에 감사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미덕인 것입니다. 또한 함께 땀흘려 농사를 지은 이웃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놀이를 즐긴 인정에 넘친 낙천적인 민족이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우리가 추석을 맞이하는 태도는 어떠한지요? 우리의 선조들처럼 마음의 벽을 허물고 담담하게 이웃과 따스한 정을 나누고 있는지요? 반성하고 깊이 생각해 복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의 벽이 허물어질 때 비로소 한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 한글날에 대하여
    • 1. 한글날의 유래
      • 한글날은 이조 4대 왕인 세종대왕께서 창제한 한글의 반포를 기념하고, 그 보급· 연구를 장려하기 위하여 제정한 날입니다. 1926년 11월 4일(음 9월 29일) 국어 연구자가 중심이 되어 신민사(잡지사)주최로 왜정 관리와 언론기관 관계자들 다수가 요리점 식도원에 모여 「훈민정음」 이 생긴 뒤 처음으로 반포 축하 기념식을 올리고, 「갸갸날」 이라고 임시로 불렀습니다. 그 후 1927년 7월 조선어연구회 회원들이 동인지<한글>을 창간하였는데, 그 해에 명칭을「한글날」로 고쳤고, 이후 조선어학회(뒤에 한글학회)에서는 10월 9일로 개정, 해방 후에는 국가에서 공휴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행하고 있는「한글날」은 원본<훈민정음>에 근거한 것으로서, 이것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1446년 (세종 28년) 10월 9일이 됩니다.
    • 2. 훈화 자료
      • 한글은 스물 넉 자로 말이나 소리를 다 적을 수 있는 과학적이고 쓰기에 편리하며,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입니다. 한자가 어려워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자가 많아 이를 가련하게 생각한 세종 임금께서 집현전 학자와 연구를 하여 한글을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는 세종대왕의 애국 애족 정신과 민주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한 때는 한글을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 때도 있었고, 배울 수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유명한 피히테라는 독일 사람은 말하기를 "순수한 국어를 살려 쓰는 민족은 번영하고 그렇지 못한 민족을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외국어를 함부로 쓴다면 우리 민족의 번영은 그 만큼 늦어질 것입니다. 외국어, 속된 말, 낮고 천한 말은 되도록 삼가고, 쉽고 고운 우리말을 살려 쓰도록 합시다.

        오늘 우리는 한글날을 맞이하여 훌륭한 우리 글을 가지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우리 한글을 잘 다듬고 가꾸어 나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라를 위한 길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 한글은 과학적이고 쓰기에 편리하며, 쉽게 배울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이라는 자부심을 가집시다.
        • 세종대왕의 주체성과 애국 애족 정신을 본받읍시다.
        • 우리는 훌륭한 우리 글을 가지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잘 다듬고 가꾸어 나가도록 힘씁시다.
  • 개천절에 대하여
    • 1. 유래 및 해설
      • 개천절은 단군 왕검께서 우리나라를 건국하신(BC.2333년) 위업을 경축하고, 건국 이념을 되새기며 우리 민족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날입니다.

        단군 신화에 의하면, 하늘을 다스리던 환인의 서자 환웅은 인간 세계에 뜻을 두고있었습니다. 이에 환인은 환웅의 뜻을 살려 천부인 세 개를 주며 환웅을 지상으로 보냈습니다.

        환웅은 바람을 다스리는 풍사, 비를 다스리는 우사, 구름을 다스리는 운사와 34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내려 신시를 정하고 곡식, 생명, 형벌, 선악 등 인간의 360여 일을 관장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에 곰과 호랑이가 사람되기를 원하더니 마늘과 쑥을 먹으며 굴속에서 견딘 곰이 여자가 되었고, 이 웅녀와 환웅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단군 왕검입니다. 단군 왕검이란 하늘을 모시고 세상을 다스리는 큰 어른이란 뜻입니다.

        이 날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고조선 시대부터 10월을 상월이라고 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조상의 넋을 위로하여 춤과 노래로써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행하여 졌는데, 이는 부족 국가와 삼국 시대까지 전해 왔었습니다.

        근세에 이르러 단군 왕검을 믿는 종교가 일어나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하여 단군 왕검을 숭상하고 제사를 지내 왔으나 일제 탄압으로 강제 폐지되었다가,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다시 음력 10월 3일을 개천일로 지키게 되었는데, 정부 수립후 1949년 개천일을 개천절로, 음력을 양력으로 바꾸어 거국적인 행사를 한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 2. 훈화 자료
      • 어느 나라나 건국 신화 속에는 그 나라 그 민족 고유한 사상 및 조상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단군 신화는 몽고의 세력이 뻗쳐 있던 고려 시대에 기록된 것인 만큼 그 속에는 자주 독립 정신이 담겨있습니다.

        홍익인간은 겨레의 백성이 서로 협력하고 단결하여 행복을 누리며, 나아가서는 전 인류 공영을 위하여 힘쓴다는 사상입니다. 이것은 환웅의 사상이며, 단군의 사상이며,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국토 통일, 번영된 조국 건설, 밖으로는 강대국과의 유대 관계 등 복잡한 상황속에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높고 푸른 10월의 하늘 아래 조상이 남긴 얼을 되살려 자랑스런 대한의 역군이 됩시다.
  • 학생의 날
    • 11월 3일은 학생의 날이다.

      일제시대의 굴욕적인 식민지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불평이 점점 높아져 가던 중 1929년 10월 30일, 전라남도 나주에서 일본 학생이 우리 한국 여학생을 멸시하고 놀린 까닭으로 당시 광주고보 학생과 일본 학생과의 충돌이 일어났었다. 그런데 일본 경찰이 우리나라 학생들만 못살게 굴어 이에 분격한 광주시내 학생들이 11월 3일에 모두 일어나 항거한 의거의 날인 것이다.

      이 운동이 전국으로 번져 애국적 항일운동으로 크게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3.1운동 후 최대의 민족 투쟁으로 1930년까지 여세를 몰아 이에 참가한 학교는 194개교요, 참가 학생 수는 5만 4천에 달했었다. 신간회는 이에 조사단을 파견하여 민중대회를 열 계획을 하는 등 학생들과 보조를 같이 하다가 간부 직원들은 일본 경찰에 붙잡히게 되어 운영을 할 수 없는 곤경에 빠지기도 하였다.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의 침략을 물리쳐 온 우리 조상들은 간악한 일본 정치에 항거하는 민족운동을 계속 벌여 왔었다. 일본은 식민지 정책을 더욱 강화하여 우리의 이름도 일본 이름으로 바꾸게 하고 우리말을 빼앗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수많은 애국지사들은 중국의 만주 땅으로, 러시아로, 하와이로 떠나 새로운 문화를 배우며 독립의 소망을 키우기에 힘썼다.

      광주학생운동은 바로 우리 겨레의 독립 운동으로서 민족의 횃불이었다. 배우는 학생의 몸으로 민족의 차별을 깨뜨리고 오로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일어선 예는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다. 이는 곧 우리의 민족 정신이요, 우리 민족의 애국심인 것이다.

      학생운동의 터였던 광주고보는 지금의 광주 제일고등학교이다. 광주일고에 세워진 기념비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피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우리도 이 정신을 받들어 정의감 넘치는 학생이 되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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