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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ME > 참고자료실 > 아름다운 시
  • 아름다운 시
  •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 - 김남조 -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기다려 줍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것은 아닙니다.

      먼저 사랑을 건넨 일도

      잘못이 아닙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수 없습니다.

      먼저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진정으로 사랑하여

      가장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 됩시다.
  • 가을의 기도
    • - 김현승 -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 국토 서시(國土序時)
    • - 조태일 -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동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 국화 옆에서
    • - 서정주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재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 류시화 -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그냥 좋은 것
    • - 원태연 -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어디가 좋고

      무엇이 마음에 들면,

      언제나 같을 수는 없는 사람

      어느 순간 식상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특별히 끌리는 부분도

      없을수는 없겠지만

      그 때문에 그가 좋은것이 아니라

      그가 좋아 그 부분이 좋은것 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그저 좋은 것입니다.
    • - 김춘수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내 마음은
    • - 김동명 -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러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 노동의 새벽
    • - 박노해 -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친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 논 개
    • - 번영로 -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峨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魂)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님의 침묵(沈默)
    • - 한용운 -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

      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목계 장터
    • - 신경림 -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靑龍) 흑룡(黑龍)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 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天痴)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있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 목마(木馬)와 숙녀(淑女)
    • - 박인환 -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庭園)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히미한 의식(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별 헤는 밤
    • - 윤동주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異國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

      란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 보리 피리
    • - 한하운 -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
  • 사 슴
    • - 노천명 -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 서시(序詩)
    • - 윤동주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섬진강·1
    • - 김용택 -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 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 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승무(僧舞)
    • - 조지훈 -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빰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알 수 없어요
    • - 한용운 -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

      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

      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 - 류시화 -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 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싶다

      혼자있으면

      그 혼자있음이 금방 들켜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 저녁에
    • - 김광섭 -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전라도 길 - 소록도로 가는 길
    • - 한하운 -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 준다는 것
    • - 안도현 -

      이 지상에서 우리가 가진 것이

      빈 손밖에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서로 바라보는 동안은

      나 무엇 하나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그대 손등 위에 처음으로

      떨리는 내 손을 포개어 얹은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스스럼없이 준다는 것

      그것은

      빼앗는 것보다 괴롭고 힘든 일입니다

      이 지상에서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

      그것은

      세상 전체를 소유하는 것보다

      부끄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대여

      가진것이 없기 때문에

      남에게 줄 것이 없어

      마음 아파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누구에게 준

      넉넉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 류시화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청포도
    • - 이육사 -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타는 목마름으로
    • - 김지하 -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통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 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하 늘
    • - 박노해 -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 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 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하늘처럼 뵌다

      아니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시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대대로 바닥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아장걸음마 시작하는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것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 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 하 늘
    • - 박두진 -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 행복(幸福)
    • - 유치환 -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향수(鄕愁)
    • - 정지용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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